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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4. 14.

    by. 미스 하모니

    목차

       

      1. 코른골트는 누구인가? – 클래식계가 주목한 천재 소년

       

       

      20세기 음악사에서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Erich Wolfgang Korngold)**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입니다.

      오늘날 그는 영화음악의 개척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의 음악적 뿌리는 철저하게 유럽 클래식 전통에서 출발했습니다.

      189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코른골트는 유년기부터 음악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아버지 율리어스 코른골트는 영향력 있는 음악 평론가였고, 그 덕분에 코른골트는 어린 나이에 당대 유수의 음악가들과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진짜 주목받게 된 이유는 인맥이 아닌, 압도적인 작곡 실력 때문이었습니다.

       

      10세 때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와 발레 음악은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같은 거장들에게 "믿을 수 없는 재능"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말러는 코른골트의 악보를 보고 “이건 진짜 아이가 쓴 게 맞냐”고 되물었을 정도였죠.

      이후 코른골 트는 불과 11세에 첫 발레곡 《Der Schneemann (눈사람)》을 발표하며, 오스트리아 궁정 오페라 극장 무대에 데뷔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루게 됩니다.

      이후에도 그의 행보는 눈부셨습니다.

       

      10대 후반에 작곡한 오페라 《Violanta》와 《Der Ring des Polykrates》는 유럽 전역에서 공연되며 클래식 음악계에 코른골트라는 이름을 각인시켰습니다.

      그의 음악은 로맨틱한 선율, 세련된 화성 감각, 풍부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당대 청중은 물론 비평가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는 단순한 천재가 아니라, 클래식 음악의 전통과 감성을 완벽히 이해하고 자신의 색으로 구현해 낼 줄 아는 ‘성숙한’ 작곡가였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코른골트는 종종 “모차르트의 재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감정의 섬세함과 극적인 표현력을 겸비하고 있어, 오페라와 관현악 분야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20세기 초, 유럽은 아르놀트 쇤베르크나 알반 베르크 등 현대음악으로의 전환기를 겪고 있었지만, 코른골트는 이와는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낭만주의 전통에 뿌리를 둔 서정적이고 극적인 음악 언어를 고수하며, 청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음악을 선택했습니다. 그의 음악은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풍부하고, 아름다우면서도 극적인 감정을 전달했습니다.

      이처럼 코른골트는 이미 20대에 유럽 클래식계에서 굳건한 입지를 다진 정통 클래식 작곡가였습니다.

      영화음악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진로 변경이 아니라, 그가 가진 클래식 기반의 음악성을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시킨 선택이었고, 그것이 후대에 끼친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헐리우드와 클래식 음악 코튼골트

       

       2. 왜 미국으로? – 유럽에서 할리우드로 건너간 작곡가의 여정

       

       

      1930년대는 유럽 전역에 정치적 불안과 예술의 위기가 퍼지던 시대였습니다.

      나치 독일의 확산과 함께 오스트리아 역시 그 영향을 피해 갈 수 없었고, 유대인 출신 예술가들은 점차 생존을 위한 선택을 강요받게 됩니다. 코른골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으로서, 이미 클래식 음악계에서 확고한 명성을 쌓았던 코른골트는 점차 유럽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 무렵,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었고, 사운드 영화의 등장으로 인해 클래식 작곡가들의 수요가 높아지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할리우드는 유럽의 망명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땅이었죠.

       

      1934년, 영화 제작자 **막스 라인하르트(Max Reinhardt)**의 초청으로 코른골트는 미국을 처음 방문하게 됩니다.

      그는 셰익스피어 원작을 바탕으로 한 워너 브라더스의 영화 《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 음악 편곡 작업을 맡았고, 이 프로젝트는 코른골트의 영화음악 경력에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미국 이주는 1938년, 영화 《로빈 후드의 모험(The Adventures of Robin Hood)》 작업 중에 일어나게 됩니다.

       

      나치의 오스트리아 합병(안슐루스)으로 인해 상황이 급변했고, 그가 미국에 체류 중이던 시점에 가족과 함께 망명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 것이죠. 그는 후에 이렇게 회고합니다.
      “로빈 후드는 내게 단지 영화가 아니었다. 내 가족을 살린 작품이었다.”

      코른골트의 미국 정착은 단순한 이민이 아니라 '예술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할리우드에서 여러 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하며, 클래식 작곡가로서의 기량을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에 맞게 펼쳐나가게 됩니다.

       

      그의 영화음악은 기존 할리우드 작곡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깊이와 예술성을 지녔으며, 이는 곧 “할리우드에 클래식을 입힌 작곡가”라는 별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당시 할리우드는 배경음악이 단순한 분위기 보조 수단에 그쳤던 반면, 코른골트는 영화의 드라마와 캐릭터에 서사를 부여하는 작곡법을 도입함으로써, 영화음악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코른골트는 영화음악을 위해 클래식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한 클래식 음악의 정신을 영화음악 안에 녹여낸 개척자였습니다.

       

      유럽에서의 작곡 경험과 정통 클래식 기법은 그를 영화음악계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었고, 이후 존 윌리엄스, 제리 골드스미스와 같은 거장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의 미국 이주는 비극적인 시대가 낳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예술적 범위를 확장하고 후대에 깊은 영향을 끼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작곡가 코른골트는 미국이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음악 인생을 꽃피웠고, 바로 그 순간부터 코른골트의 두 얼굴—클래식과 영화—이 모두가 본격적으로 완성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3. 할리우드에 클래식을 입히다 – 코른골트의 영화음악 스타일

       

       

      클래식 작곡가로서 경력을 시작한 코른골트는 미국 할리우드에 정착한 이후, 곧장 영화음악의 개척자로 자리매김합니다. 그가 단순히 영화의 배경을 위한 음악을 만든 것이 아니라, 클래식 작곡 기법을 활용해 영화의 감정과 구조를 드라마틱하게 이끌어낸 방식은 당시로선 혁신적이었습니다.

       

      3-1 웅장한 오케스트라, 클래식의 언어로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다

       

      코른골트의 영화음악은 무엇보다 대규모 오케스트라 편성이 특징입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풍부한 음향과 감성적인 멜로디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그는 클래식 음악처럼 **주제 동기(leitmotif)**를 사용하여 등장인물이나 특정 장면에 반복적인 음악 테마를 부여했고, 이는 후일 **존 윌리엄스(Star Wars, Harry Potter)**가 적극적으로 활용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대표작인 **《로빈 후드의 모험》(1938)**은 영화음악사에서 첫 번째로 오리지널 스코어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에서 코른골트는 영웅의 모험을 묘사하는 데 있어, 서사적인 관현악 사운드와 밝고 힘 있는 주제 선율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영화음악은 단순한 배경음이 일반적이었지만, 코른골트는 음악만으로도 줄거리의 긴장과 감정을 표현해내는 경지를 보여주었죠.

       

      3-2 영화 속 클래식, 클래식 속 영화적 감성

       

      그의 음악은 영화 장면에 맞춰 작곡되었지만, 이를 순수 음악으로 감상해도 훌륭할 만큼 구조와 표현이 정교합니다.

      실제로 그의 영화음악은 후에 관현악 모음곡으로 편곡되어 연주회 레퍼토리로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코른골트는 영화음악과 순수 클래식 음악의 경계를 허물고, 두 장르의 예술적 가치를 동시에 끌어올린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나는 영화에 클래식을 입힌 것이 아니라, 클래식에 영화적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그의 철학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코른골트의 음악은 드라마적 서사, 감정의 극대화, 시각과 청각의 유기적인 결합이라는 영화 고유의 특성과, 정통 클래식 음악의 구조와 예술성이 결합된 결과물입니다.

       

      3-3 후대 영화음악의 스타일을 정의하다

       

      코른골트의 음악적 유산은 지금도 현대 영화음악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 존 윌리엄스는 “내 음악은 코른골트의 직계 자손”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 제임스 호너(Titanic), 하워드 쇼어(Lord of the Rings) 등 수많은 작곡가들이 코른골트의 스타일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그가 창조한 클래식 기반의 영화음악 어법은 오늘날까지도 블록버스터 영화의 기본이 되었으며, 대중이 영화 속에서 웅장하고 감동적인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기대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클래식을 영화에 입힌 작곡가, 할리우드 오리지널 스코어의 아버지, 영화음악의 낭만주의자—이 모든 수식어가 말해주듯, 코른골트는 단순한 전환이 아닌 두 장르의 아름다운 융합을 만들어낸 인물이었습니다.

       

       

      4. 클래식과 영화음악의 경계에서 - 코튼골트

       

      코른골트가 할리우드에서 남긴 영화음악 중 몇몇 작품은 단순한 흥행을 넘어서, 오늘날까지 고전으로 평가받는 명작들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세 작품은 《로빈 후드의 모험》(1938), 《해적》(1940), 《엘리자베스와 에섹스의 사생활》(1939)입니다.

      이들 작품은 코른골트가 단순히 배경음악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클래식 작곡가로서의 깊이와 영화적 감각을 결합해 낳은 걸작들이죠.

       

      4-1. 로빈 후드의 모험 (The Adventures of Robin Hood, 1938)

       

      코른골트의 영화음악 경력에서 가장 상징적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에롤 플린(Errol Flynn)**이 주연을 맡은 활극으로, 정의롭고 용감한 영웅 로빈 후드의 전설을 경쾌하게 그려낸 영화입니다.

      코른골트는 이 영화를 통해 웅장하고 서사적인 주제음악의 전형을 제시하며, 향후 블록버스터 영화음악의 전범이 되는 스타일을 확립합니다.

      • 영화의 주요 테마는 힘차고 밝은 관악기 선율로 시작되며, 로빈 후드의 의협심과 자유에 대한 열망을 음악적으로 형상화합니다.
      • 연주에는 풀 오케스트라가 동원되었고, 각 장면의 감정과 동작에 맞춰 유연하게 리듬과 악기 구성이 변화합니다.
      • 특히 전투 장면에서는 현악기의 긴박한 패시지와 타악기의 박진감이 어우러져 화면과 완벽히 호흡합니다.

      이 작품으로 코른골트는 1939년 제1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오리지널 스코어상’을 수상하며, 영화음악 작곡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합니다.
      그의 수상은 단순히 음악이 아름다웠기 때문만이 아니라, 음악이 영화의 서사를 어떻게 구성하고 강화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4-2. 엘리자베스와 에섹스의 사생활 (The Private Lives of Elizabeth and Essex, 1939)

       

      이 작품은 **베티 데이비스(Bette Davis)**와 에롤 플린이 주연을 맡은 역사 로맨스 영화입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와 젊은 에섹스 백작 사이의 권력과 사랑, 정치적 긴장을 다룬 이 작품에서, 코른골트는 낭만적이면서도 장엄한 음악 세계를 창조합니다.

      • 서곡은 중후한 금관악기와 스트링으로 구성되어, 16세기 영국 궁정의 화려함과 중압감을 동시에 전달합니다.
      • 엘리자베스의 심리적 갈등을 반영한 주제는 클래식 오페라에서 볼 수 있는 동기 전개 기법을 도입하여, 캐릭터에 정서적 깊이를 더합니다.
      • 영화 후반의 비극적인 전개에 따라 음악도 점점 어두워지고 섬세해지며, 결국 정서적으로 매우 몰입도 높은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이 작품의 음악은 이후 클래식 음반으로도 편곡되어, 코른골트 영화음악 중에서도 가장 감성적인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4-3. 해적 (The Sea Hawk, 1940)

       

      또 다른 에롤 플린 주연의 해양 모험 영화로, 코른골트는 이 작품에서 해양 서사와 영웅 서사의 조화를 음악으로 구현합니다.
      《해적》은 《로빈 후드》 이후 코른골트의 영화음악 스타일이 더욱 성숙해진 작품으로, 다이내믹한 모험의 리듬과 낭만적 선율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걸작입니다.

      • 오프닝부터 강렬하게 펼쳐지는 현악의 역동적인 흐름과 금관악기의 위엄 있는 테마는 영화의 박진감과 어드벤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립니다.
      • 주요 장면에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템포와 악기 조합으로, 긴박한 전개와 시각적 연출에 정교하게 맞춰집니다.
      • 특히 해상 전투 장면에서는 음악이 마치 파도처럼 움직이며, 장면에 생생한 리듬감을 부여합니다.

      이 음악은 코른골트가 얼마나 영상과 음악의 리듬을 계산적으로 결합했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사례이며, 현대 영화음악 작곡가들에게도 여전히 참고되는 작품입니다.

       

      이러한 대표작들은 단순한 스코어 그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클래식 작곡가가 영화를 이해하고, 장면을 음악으로 설계한 예술적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코른골트는 할리우드에서의 작업을 통해 “영화음악도 클래식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5. 클래식 작곡가로서의 귀환과 유산 – 코른골트는 지금도 유효한가?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는 전 세계적으로 이름이 잘 알려진 영화음악 작곡가이자, 20세기 클래식 음악의 중심에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정체성을 구축한 예술가였습니다.

      나치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고, 영화음악에 몰두하다가 다시 순수 클래식 작곡가로 돌아가려는 시도는 그가 단순히 시대의 흐름에 편승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5-1. 전쟁 이후의 코른골트 – 클래식으로의 귀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코른골트는 영화음악계에서 한발 물러서고 본격적으로 클래식 작곡가로 복귀합니다.

      그는 이 시기에 교향곡과 협주곡을 집필하며, 영화음악을 통해 다듬어진 자신의 감각을 정통 클래식 형식 속으로 융합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교향곡 제1번 F#장조》**와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가 있습니다.
      • 《바이올린 협주곡》은 오페라적 선율미와 풍부한 관현악 기법이 조화를 이루며, 1947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작곡가 본인의 지휘로 초연되어 호평을 받았습니다.
      • 특히 이 협주곡은 훗날 잇작 펄만(Itzhak Perlman), **힐러리 한(Hilary Hahn)**과 같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애정하는 레퍼토리로 남게 되죠.

      하지만 클래식계에서는 코른골트를 ‘영화음악 작곡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저평가하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당시 클래식 음악계는 쇤베르크, 베베른, 스트라빈스키와 같은 아방가르드 스타일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낭만주의적 언어를 고수한 코른골트는 오히려 구시대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입니다.

       

      5-2 코른골트는 지금도 유효한가? – 영화음악의 DNA로 살아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평가는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현대 영화음악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코른골트는 빠질 수 없는 존재로 재조명됩니다.

      • 존 윌리엄스는 스타워즈 음악에서 코른골트의 《로빈 후드의 모험》을 연상케 하는 **웅장한 테마와 동기법(leitmotif)**을 적극적으로 계승했습니다.
      • 제임스 호너, 하워드 쇼어, 앨런 실베스트리 등도 코른골트가 확립한 클래식 기반 영화음악 언어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발전시켰습니다.

      또한 클래식 연주계에서도 코른골트의 위상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 그의 영화음악 모음곡은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에서 정기적으로 연주되고 있으며,
      • 《바이올린 협주곡》과 《교향곡》은 20세기 낭만주의 음악의 정수로 재평가받고 있습니다.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코른골트는 단순히 “영화음악을 잘 쓴 작곡가”가 아니라,
      **“영화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에 클래식을 이식해 낯선 장르를 예술로 끌어올린 개척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영화와 클래식 사이, 시대를 잇는 연결자

       

      코른골트는 클래식 작곡가의 눈으로 영화를 바라봤고, 영화라는 대중 예술의 틀 안에서 클래식의 미학을 지켜냈습니다.
      그가 남긴 유산은 단순한 악보나 영화의 한 장면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날 대중이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사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코른골트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스크린 너머에서도, 공연장 안에서도 여전히 울려 퍼지며,
      우리에게 클래식과 영화, 두 세계가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6. 비판의 대상이 된 코른골트 – 시대와 장르 사이에서

       

       

      6-1. 클래식계의 냉담한 반응 – “시대착오적 낭만주의자”

       

      코른골트는 유년 시절부터 천재로 불렸고,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인정을 받을 정도로 전도유망한 작곡가였어요.

      하지만 1930년대 후반 이후 할리우드에서 영화음악 작곡가로 전업하자, 유럽 클래식 음악계는 그를 진지한 작곡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주요 비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아방가르드(avant-garde) 계열 작곡가들은 코른골트의 음악을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구시대적"이라 평가했어요.
      • 당시 유럽에서는 쇤베르크, 베베른, 베르크 등의 12음 기법과 불협화음을 중심으로 한 현대음악이 예술의 전위로 여겨졌기 때문에, 코른골트의 풍부한 선율과 조성 중심 음악은 “퇴행”으로 간주되기도 했죠.
      • 음악 평론가 중 일부는 그를 **“오페라 감수성으로 영화에 로맨틱함만 주입한 상업 작곡가”**로 폄하하기도 했습니다.
      • 클래식계 내부에서는 영화음악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낮은 평가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배경음악"은 순수예술이 아니며, 장면의 감정을 지나치게 유도하는 감성적인 작곡은 예술적이지 않다는 시각이 강했죠.

      특히 코른골트가 전후 유럽 클래식계에 복귀하고자 시도했을 때, 그의 **《교향곡 제1번》이나 《바이올린 협주곡》**은 당대 비평계에서 "너무 영화적이다", "표현은 훌륭하지만 진보적이지 않다"는 식으로 저평가되기도 했습니다.

       

      6-2. 영화계 내부의 비판 – “너무 예술적이고 무겁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른골트는 영화계 내부에서도 일부 제작자들과 충돌을 겪었습니다.

      • 당시 할리우드에서는 영화음악이 보통 단순한 배경효과로 여겨졌고, 제작자의 지시 아래 기능적으로 작곡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코른골트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 그는 대본을 읽지 않고는 작곡하지 않았고, 감독과 장면 분석을 거쳐 완전한 오케스트라 편곡을 직접 지휘했으며, 이는 당시로선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 일부 제작진은 그를 "너무 까다롭고 예술가적인 태도를 가진 작곡가"라고 여기기도 했고, 때로는 예산 문제나 제작 일정 문제로 그와의 협업을 꺼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양극단의 평가 속에서 코른골트는 클래식계에도, 영화계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의 역할을 해야 했죠.

       

       

      7. 코른골드의 반응 – “음악은 음악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비판에 대해 코른골트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놀랍게도 그는 자신의 신념을 매우 일관되게 유지한 인물이었습니다.

       

      7-1. “나는 언제나 오페라처럼 작곡한다”

       

      그는 영화음악을 단순한 기능음악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나는 영화를 마치 무대 위의 오페라처럼 다룬다. 모든 인물과 장면은 음악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즉, 영화음악이라 해도 캐릭터와 감정, 내러티브가 있는 이상, 거기엔 고유한 음악 언어가 필요하며, 자신은 그걸 클래식의 어법으로 완성하고 싶었던 거예요.

       

      7-2. “나는 미국에 온 것이 아니라, 미국이 나에게 왔다”

       

      코른골트는 **유럽에서의 정치적 박해(나치의 반유대주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입장이었고, 자신의 음악 세계를 지키기 위해 새로운 장르인 영화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미국에서 영화음악을 위해 음악을 타협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가 나에게 클래식을 요구한 셈이다.”

       

      7-3. 클래식계의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태도

       

      전후에 클래식 복귀가 쉽지 않자, 코른골트는 한때 실의에 빠졌지만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음악의 가치에 대해선 끝까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추구한 낭만주의 음악이 결코 시대착오적이 아니며, ‘감정의 전달’이야말로 음악의 본질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유행은 지나가도 진심은 남는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의 말은 맞았죠. 오늘날 클래식계와 영화음악계 양쪽 모두에서 코른골트는 중요한 인물로 재평가받고 있으니까요.

       

      7-4 비판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음악가의 신념

       

      코른골트를 향한 비판은 단지 한 작곡가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예술성과 대중성”, “전통과 혁신”, “클래식과 영화”라는 긴장 속에서 벌어진 문화적 충돌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른골트는 그 속에서 자신만의 음악 언어를 꿋꿋이 지켜냈고, 오늘날 그 음악은 클래식 애호가와 영화 팬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의 태도는 "예술은 시대를 초월해야 한다"는 믿음의 표본이라 할 수 있겠죠.